GOP투입
이등병이라서….낙오자라는 나의 인상을 절대로 심어줄 수 없었기 때문에 선임들을 따라서 이를 악물고 올라갔다.
최전방 선조들의 묘
GOP 폐초소와 진지를 점검 하던 중 “충혼이 서린 그대 우리를 믿으소서“라는 비석을 발견했다.
이곳은 남북전쟁시 많은 선조들이 전사한 곳이라고 한다. 전쟁중이라 많은 시신들을 한곳에 모아서 묻고는 이 비석을 세워 글을 썼다고 한다. 이 말의 깊은 의미를 알고 나니까 선조들의 믿음에 보답을 하고 싶은 사명감이 생겼다.
혹한기훈련 사전 브리핑
혹한기 훈련에 앞서 상부에 브리핑을 하는 일이 있었는데 설상모델을 하여 연대장님 앞에서 철처하게 훈련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드렸다.
공지합동훈련
공군과 함께 한 서로 협동하여 목표를 탈취하는 훈련이었다.
“내가 복무했던 부대가 제일 특별 했어“라고 표현하는 나
모두 자신만의 특별한 다짐을 안고 혈기왕성한 대한건아들은 입대를 한다. 5주간의 훈련병의 생활을 마치고 이등병이란 계급장을 받으며 “나도 어느샌가 군인다워졌군“이라고 자아도취에 빠지는것도 잠시, 자대를 배치받아 무한 어리버리함을 동반한 자신의 모습으로 모두들 좌절을 겪어봤을 것이다.
훈련병 1주차 시절 4, 5주차의 훈련병들은 마치 인기 연애인보듯 멋있어 보이고, 자신이 4,5주차 훈련병이 됐을땐 내가 선임이라도 된듯한 마냥 1주차 훈련병들을 귀엽게 쳐다보며 마치 모든 것을 다 안다는 듯한 거만함으로 군생활의 요령을 말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도 단 2주 뿐, 자대를 가서 느끼게 되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절대반지를 끼고있는 병장의 포스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백두산부대 대한민국 예비군 4년차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전역자라면 공감할 수 있고 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다수의 의견처럼 표현해 보았다.
모든 전역자들은 자신의 군생활을 부풀린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러면서 “내가 복무 했던 곳이 가장 힘든곳이었다.”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나는 “내가 복무 했던 곳은 가장 특별 했어.”라고 표현을 하고 싶다.
공부가 하기싫어 2년간의 도피처로 생각했던 군대였지만 이것이 나의 첫번째 실수다. 군가, 도수체조, 사격요령, 훈련요령, 작업요령등 단체생활 그리고 군인이 되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알아야만 할 일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의 GOP투입은 엄청난 인내를 동반했다. 매일 8시간이상의 철책경계근무와 무수한 작업들은 끝이 없었다. 훈련없는 경계근무를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똑같은 보수로 1년간 한사람에겐 많은 일거리를 주었고 한사람에겐 그냥 앉아서 일거리 없이 시간을 보내라고 가정해보자. 과연 매일 앉아서 일거리 없이 시간을 보내는게 과연 쉬울까? 물론, 경계근무가 가만히 서서 북을 경계만 하는 건 아니라는 말을 덧붙인다. 여름엔 35도가 넘는 폭염으로 겨울엔 영하30도가 넘는 강추위로 경계하는 건 정말 힘들다. 매일 실탄과 수류탄을 소지하고 다니는 나의 모습은 마치 람보라도 되는 착각을 하게 되지만 실전인 만큼 항상 조심성과 책임감이 뒤따른다.
1년간의 GOP생활을 마치고 다른부대와 교체를 하게 된다. 일반 부대로 내려운 나는 유격, 혹한기 등 수많은 훈련과 전술훈련을 통해서 새로운 군인으로 태어나게 된다. GOP와는 전혀 다른 규칙적인 일과시간과 휴식이 보장되는 주말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새벽에 울리는 싸이렌 소리, 전투준비태세로 훈련이 시작된다.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며 군장을 꾸리고 중요자료를 폐기하는 등 전쟁준비에 필요한 모든 일들을 신속하게 하는 작업이라고 보면 되겠다. 야간과 산을 통해 움직이는 등 훈련은 정말 많은 일들을 한꺼번에 하게 된다. 모두가 처음하는 훈련이라 하더라고 확실히 계급마다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이것이 바로 “짬밥” 이라 불리는 노하우 아닐까 생각한다. 군장을 메고 기나긴 행군을 끝으로 훈련은 종료된다. 단거리는 상위권이었지만 장거리는 항상 하위권을 맴돌았던 나는 행군을 통해서 많은 끈기를 얻게 되어 훈련중 행군을 가장 좋아하고 특별하다고 남들에게 말한다.
감히 넘 볼수 없던 병장에 영역에 나도 그 위치에 오게 된다. 항상 이끌려 다녔다면 이젠 이끌고 다닐 차례다. 훈련을 잘 이끌고 넓게는 소대장, 부소대장을 지휘를 바탕으로 소대를 이끌게 된다. 선임들보다 후임들에게 신뢰를 얻는 것이 더 어렵다. 하지만 나에게도 “짬밥“이란 것이 있기 때문에 문제 없었다.
24개월이란 병복무 만기일이 다가왔다. 군생활을 돌이켜 보면 한 울타리안에서 후임들에게 당근보다 채찍을 주는 일이 더 많았을 것이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 라는 책이 있다. 당근을 더 많이 줬어야 하는 것일까라는 생각도 하게 되지만 군대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무엇이 정답인지 아직도 명확한 답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확실한 정답하나는 알아왔다. 나를 비롯한 모든 전역자들은 발전된 자신의 모습을 최소한 한개이상은 얻게 된다. 발전된 나를 발견했기에 나의 군생활은 특별 했던 것이다.